BYC 창업주 한영대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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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C 창업주 한영대 회장 별세

김지민 기자 0 2022.01.18

BYC 창업주 한영대 회장이 향년 100세로 지난 16 별세했다. 

 

한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1녀 중 셋째로 태어나 북면 소재 4년제 소학교와 정읍에 있는 6년제 정읍 보통학교를 졸업했다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광복 1주년이 되던 1946 8 15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해 내의 산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 회장은 오직 내의 산업에 헌신해 국민 보건과 의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와 신념으로 회사를 이끌었다광복 직후 국내 상황은 물자 부족 등으로 극심하게 피폐해져 있었다. 당시 남쪽 인구는 약 2000만명이었지만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약 52만매에 불과해 국민 37.6명당 내의 1매 꼴로 보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이에 한 회장은 더 이상 국민들이 추위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도록 서둘러 메리야스 내의 생산 착수에 나섰다.

 

한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의 생산을 위한 한 회장의 강인한 의지와 집념노력으로 편직기의 성능과 수를 증설했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여 나갔다.

 

해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6.25전쟁은 사업의 기반을 잘 다져 나가던 한 회장에게 큰 위기로 다가왔다그러나 한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전쟁이 끝난 후의 미래를 위한 전략을 세웠다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운영자금으로 다량의 원사를 구입해 보관했으며 전북 경제 상권의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전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이후 한 회장은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물 내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으며 대 중 소로 구별했던 속옷 사이즈를 4단계(85 90 95 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BYC는 또한 1975 6월 상장했으며 1990 6월 대신경제 연구에서 선정한 최우수 상장기업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한 회장은 1985년 주식회사 백양의 간부 회의에서 기업의 명운을 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수출 상품에 해외 유명 업체 브랜드를 부착하는 OEM 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백양의 독자적인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회사의 경쟁력 강화와 장래성을 주장하는 수출부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영업부의 대립과 설전이 팽팽하게 이어졌다이사회 회부와 기립투표까지 진행된 이 안건에 대해 키를 쥔 한영대 회장은 고심 끝에 수출부 손을 들었다큰 어려움이 예견되지만 독자 브랜드 개발을 통해 백양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오늘날 전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 ‘BYC’의 탄생이었다.

 

국내 및 해외 시장에 진출한 BYC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상표를 넣은 로고와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장해 나갔다전성기에는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어치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꾸준히 상승한 인기와 인지도에 한회장은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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