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덕현 에세이) 낙오, 성공의 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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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현 에세이) 낙오, 성공의 발판이다



내 인생에서 나만의 작은 실패가 3번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려고 입학시험을 보는데, 1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어린 마음에 서울로 가는 게 두려움이 생겼다. 아버지께서 남자가 커서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에 2차로 치른 중동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두 번째가 70년도 대학입시 시험에서 낙방하고 재수한 것이다. 2회 대학입시 예비고사를 실시했는데, 용산고 동기 약 480여명은 전원 합격을 하며 각자가 원하는 대학입시 본고사를 치렀다. 당시에 많은 학교에서 대학입시 예비고사에서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학교별 실력 차이가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대학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나서 재수하기로 하고, 1년간 학원종합반을 등록하고 대학입시 공부에 전념했다. 당시 종로에 있는 유명학원에 입학하여 1년을 학원과 도서실을 다니며 입시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 유혹도 많았다. 1년을 재수하고 나서 연세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세 번째 낙오는 직장이었다. 우리 시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선택하여 입사하는 시대였다. 산업이 한창 발전하는 시대로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본인이 원하면 어느 정도의 직장은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코오롱을 선택했다. 코오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신입사원 모집 공고에 스포츠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레저 스포츠라는 단어가 새로 생긴 시대였다. 입사 후 차장까지는 걸림 없이 진급하였다. 회사에서는 조직 구성 인원을 피라미드형으로 만들기 위해 진급 단계에서 평가에 의한 강제 탈락제도가 있었다.

 

차장에서 부장 진급하는 시기에 나는 봉제 사업본부 피혁부장에서 스포츠 사업본부 생산부장으로 19941월에 발령받았고, 부장 진급 심사는 4월에 있었다. 1월부터 3월까지 생산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평가 심사 결과가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부장에 진급해야 부장 직급 5년 안에 임원이 될 수 있었다. 부장 진급에 낙방하고 나서 약 1개월 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나 곧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 부장의 역할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장사가 잘 되어서 즐거웠는지, 즐겁게 일해서 장사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후자일 거다. 하는 일이 즐거우니 토요일과 일요일도 일하고 싶었고 월요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아내와 두 아이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현명한 아내가 아이들과 집안 살림을 잘 건사했기 때문에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다.

 

물론 일하면서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지루함과 짜증은 잠시 뿐이고 경험과 공부를 통한 나만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즐거움이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직원들과 대화할 때 즐겁게 일을 하자보다 내가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찾자고 이야기한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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