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덕현 에세이) 배우자 간에 최고의 예우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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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현 에세이) 배우자 간에 최고의 예우를 해라


 

1980년이 저물 무렵,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수수한 듯 아름다운 그녀와 나는 만난 지 6개월 만인 1981425일에 인사동 근처 수운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집사람의 근무지가 갈현동이어서 갈현동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남자가 가정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않던 시절이라 집사람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학교 생활하려, 집안 살림하랴 내색하지는 않지만, 고생이 엄청났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우리는 당시 재형저축을 들어 목동에 27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목동에서 갈현동으로 출근하기가 힘들어서 다시 불광동으로 이사를 와서 학교생활을 하다가 내가 오사카로 가게 되어 집사람은 사직하고 나와 함께 일본 오사카로 이사하였다.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며 몸을 돌보지 못한 아내는 건강이 좋지 못하다. 지금도 가끔 앓을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집사람은 나의 약점을 장점으로 가지고 있어 나의 인생에서 믿음을 주는 동반자이다. 인생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집사람은 정확하고 명쾌한 결론을 내도록 도움을 주어 왔다.

 

본인 학교 사직 시, 또한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는 결정, 내가 건간상 회사를 사직할 때, 그리고 다시 복직하여 중국 상하이로 근무하러 갈 때 등 내가 마음의 갈등을 느낄 때마다 많은 용기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은퇴 후에 나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준비해주는 모습은 정말 마름답고 고맙다. 늘 제철 음식과 과일을 때맞추어 준비해준다. 지금의 나는 집사람의 고생으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사람은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1%의 가능성이 있으면 1%를 믿고 실천하는 성격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통해 몸에 익은 효율성과 조심성을 우선으로 한다. 집사람은 효율성과 가성비보다는 실행을 우선하여 판단한다. 같이 지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사람의 의견이 옳았다는 것이 많이 증명되었다. 집사람의 헌신에 대해서는 과거나 지금에나 고맙고 앞으로도 고마워할 것이다. 아프로 같이 할 20년도 협의와 조정으로 함께할 것이며 서로 건강을 챙겨주고, 이야기하는 즐거운 날들을 기대한다.

 

우리의 인연을 맺어준 친구 C군에게 감사를 보낸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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