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덕현 에세이)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키울 시스템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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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현 에세이)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키울 시스템을 만들라

 

디자인은 의류 패션 산업에서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 사업을 하며 디자이너들의 잦은 이직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다. 디자이너가 보통 3~4년 근무하면 회사를 바꾸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 브랜드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면 브랜드 콘셉트에 지루함을 느끼고, 본인의 한계를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본인의 실력을 발휘해보고, 또한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욕구, 즉 자기 계발을 위해서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회사 내의 여러 브랜드에 순환 근무를 하게 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서로 다른 브랜드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지면 디자이너로서도 한 회사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오래 다닐 수 있으니 좃을 것이고, 회사 측에서도 유능한 딪이너를 충분히 활용하며 이직으로 말미암은 상품의 컨셉 유지와 품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정작 디자이너 본인들은 한 회사에서 오래 몸담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나 보다.

 

패션 회사이므로 디자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임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디자이너 출신 중에서 임원을 뽑기로 하고 코오롱 출신으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OO을 상무로 영입하여 여성복을 맡겼다. 또한, 패션회사로서 상품력의 핵심인 디자이너와 제품 생산력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약 3년 계획으로 패턴사와 생산 전문가와 MD를 임원으로 발굴한다는 목표를 세워 교육하였다.

 

2002년도, 중소기업을 제외한 대기업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 출신의 임원으로 발탁한 것은 업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의류 브랜드 사업에서 상품력의 중요성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후 각 브랜드 디자인 실장들의 업무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당시만 해도 아웃도어 의류의 패턴과 컬러에 대한 인식은 요즘과는 많이 달랐다. 펑퍼짐한 스타일과 어두운 컬러가 아웃도어의 본질이라고 인식할 때였다. 코오롱스포츠는 그러한 한국 아웃도어의 산실이라는 직원들의 자부심이 상당하였다.

 

그러나 이미 패션은 다르게 흐르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부장, 기획과장, 영업과장, 디자인 실장과 회의를 하며 아웃도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토론했다. 나는 패턴의 슬림화와 밝은 컬러로의 변화를 요구하였으나 당시에는 직원들이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섹시한 패턴과 섹시한 컬러의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어라.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다음 시즌에 모두 사표 나라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러한 지시로 생산된 아웃도어 의류는 3년 후 아웃도어의 유행이 되었고, 2004년부터 변화된 아웃동 의류는 대유행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아웃도어 열풍은 약 10년 간 유행을 하며 지금도 일부 조금 약하지만 계속되고 있다. 남들보다 앞선 창의저긴 사고와 판단이 코오롱 스포츠 의류의 열풍을 이어온 것이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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