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8 - 만시지탄 ‘M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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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Choice의 Market Story 8 - 만시지탄 ‘MCM’

BHChoice 4 2019.04.09

BHChoiceMarket Story 8

만시지탄 ‘MCM’ 김성주

 

지난 2012년 가을 18대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당시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진보정당인 민주통합당은 문재인 후보가, 본 선거 등록을 하지 않고 사퇴는 했지만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3파전 양상으로 대선판을 달구던 상항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선거판의 열기가 고조되던 1010‘MCM’의 김성주 대표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다는 깜짝 뉴스가 나왔다. 이 소식은 정치판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은 물론 관심이 거의 없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신기한 뉴스거리가 되었다. 더군다나 패션계에 있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온종일 김성주 대표의 정치 활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패션인 또는 패션기업 경영인이 정치에 입문한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에 당시 김성주 대표의 정치 한 가운데로의 진입은 패션인들에게 가십거리, 즉 당시의 핵이슈였다. 그녀가 패션 산업의 국가적 정책 결정에 많은 기여를 해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녀를 진정한 패션인으로 보지 않으려는 이들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의견 등 분분했다.

 

김성주 대표가 패션인이 아니라면 진정한 패션인의 정의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패션인이라면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실상 패션인은 의류 디자인과 관련한 사람들로 좁게 해석하여 일컫는 경향이 있다. 그런 관점이라면 김성주 대표를 진정한 패션인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실 김성주 대표는 삼성의 이서현 사장처럼 패션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엿한 패션기업 MCM 등의 브랜드를 이끌어 가는 경영인이다. 그녀는 소위 재벌의 자녀로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유명 브랜드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것이 곧 그녀가 패션에 대해 알게 된 계기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필자 역시 그녀가 1970년대 학생 시절에 부친인 김수근 회장으로부터 명품 가방을 선물 받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회고를 직접 듣기도 했다. 여하튼 그녀의 그런 명품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사업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측면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런 김성주 대표가 정치 활동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판에 뛰어 들었으니 말들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은 한마디 한마디 꺼낼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고, 역시나 매번 파장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선거판 노이즈 마케팅의 최적임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녀의 그런 범상치 않은 언행은 그녀가 이끌어 가는 경영 스타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성주인터내셔널, 성주디앤디, 궁극적으로 성주그룹으로 사명을 바꾸는 중에도 변치 않고 본인의 실명을 사용하는 자신감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그녀가 체득한 지식과 판단을 가장 우선시 한다. 때로는 오만과 독선으로 비쳐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일부에게는 아집과 편견으로 보여 지기도 하고, 일부에게는 집념으로 보여 지는 등 항상 광폭의 반응을 가져다준다. 백화점 바이어를 부도덕한 이들로 정의하고 행동하는 면면을 노블레스 오블리쥬로 홍보하는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여자 군입대’, ‘진셍쿠키발언은 그녀에게도 그녀를 아는 이들에게도 별스럽지 않은 예사로운 것이었다.

 

‘MCM’ 경영도 그랬다.

1990년대 후반 국내 가방 시장은 명품 시장과 저가 시장으로 뚜렷한 양분체제로부터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그 시기에 ‘MCM’이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그녀는 ‘MCM’이라는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명품처럼 운영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MCM’이 명품의 반열에 함께 하는 것을 소비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때마침 저가 시장의 벽을 뚫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몇몇 브랜드들과 더불어 새로운 Zone을 형성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Daks’, ‘Louis Quatorze’, ‘Metro City’, ‘MCM’ 이들 4개 브랜드들은 명품 브랜드의 대체재로 자리매김하면서 ‘Sub Luxury Market’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고 ‘Sub’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 했다. 그녀의 지향점은 항상 ‘MCM = Luxury’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주 대표는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85년부터 약 2년간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부친 회사인 대성그룹 내에 패션사업부를 만들어서 명품 브랜드를 수입하여 유통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GUCCI’, ‘Marks & Spencer’, ‘MCM’ 등을 정식으로 도입하는 회사를 독립하여 창업했지만 자금난으로 대성그룹의 지원으로 연명하게 된다. ‘GUCCI’ 판권을 넘기면서까지 자구책을 강구했으나 경영난은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되었고 급기야 ‘MCM’ 운영권을 대성그룹에 임시로 맡기게 된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운영을 맡은 대성은 짧은 기간에 ‘MCM’을 정상궤도에 올리게 되는데 이에 따라 대성 측은 유무형의 계약에 의해 ‘MCM’을 완전하게 넘겨줄 것을 요구하데 되고 그 과정에서 형제간의 물리적 충돌에 더하여 법정 다툼까지 가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김성주 대표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김성주 대표와 형제간의 반목이 지속되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의 다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후 순풍에 돛을 달은 듯 ‘MCM’은 시장에서 득템 1순위에 오르게 되고 경영이 정상화되면서 반대로 경영난에 시달리던 오스트리아 본사로부터 아예 ‘MCM’ 브랜드를 매입까지 하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된다.

 

부친과 대성그룹의 도움이 어디까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MCM’은 성공했고, 그 성공은 드라마틱하게 이루어 졌으며, 그 중심은 분명 김성주 대표가 있다. 그런 김성주 대표, 패션회사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이 정치권에 들어 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그녀의 제2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후일 회장으로 직책명 변경) 취임은 정치적으로 패션업계를 위해 일조해 주길 바라던 패션계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갖고 있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정치권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그녀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하다.

필자도 이 순간 그녀가 패션인인지, 경영인인지, 사업가인지 아니면 무슨 다른 정체성으로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시지탄 같은 느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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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홍순호 2019.04.09 18:32
참 복잡미묘한 느낌이 드오. 사업권을 둘러싼 형제 간의 다툼이라든지, 잘 나가던 사업가의 이미지에서 갑자기 정치권으로의 개입이라든지... 역시 인간은 단세포 동물이 아닌가 보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ㅎㅎ
최병호 2019.04.09 20:19
피는 물보다 진하겠지만 재물에 미치지는 않나 봐요....ㅎㅎ
김정회 2019.04.09 19:29
병호동기님  브럔드에  대한  철학! 참  중요했는데  전  그걸  미처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제라도  !
최병호 2019.04.09 20:21
브랜드 중요하지요...
문제는 어떻게 그걸 만들어 갈건지 보다 고민해야겠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