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덕현 에세이) 삶, 끝나지 않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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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현 에세이) 삶, 끝나지 않은 도전

baiksong51 0 2019.12.23

기자 초년병 시절 코오롱상사에는 빵부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빵부장은 영업을 담당하면서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빵을 사다가 판매사원들에게 주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번에 미디어패션쇼의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는 사람의 과거 별명이다. 이 사람은 백덕현 FnC코오롱의 전 대표이사다. 백덕현 대표이사가 얼마 전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를 발간했다. 미디어패션쇼는 백 대표의 에세이 , 끝나지 않은 도전을 연재하기로 했다. <편집자주>

      

 

1. 자녀교육은 몸소 실천하라

 

초등학생 시절 무렵의 내 고향 파주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던가? 나는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동네 친구들과 한창 뛰어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유리 조각이 무릎에 깊게 박혀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쳐서 부리나케 병원에 갔다. 치료를 다 받고 밤이 이슥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 날 아침, “덕현아 학교 가자라며 아버지께서 깨우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2km 정도의 거리라 다친 다리로는 등교하기가 무리라는 생각에 당연히 며칠 집에서 쉴 줄 알았다.

 

아버지, 너무 아파요

어서 자전거 뒤에 타라

 

아버지는 그 한마디 말로 내 의도를 일축하고, 굳이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까지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학교는 방학 때만 안 가는 거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라고 하시며 열흘 동안 자전거로 등하교를 도와주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어릴 적에는 변변한 학교가 없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나와 우리 형제는 그 어떤 일보다 학교가 가장 우선이 되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교육으로 나는 초등학교 6, 중고등학교 6, 모두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중학교부터는 파주에서 서울로 기차통학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당시 기차는 세 시간마다 하루에 여섯 번 있었다. 매출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기차를 타서 서울로 갔고, 돌아올 때는 서울역에서 오후 6시 기차를 타서 파주 집에 도착하면 저녁 730분이었다. 이렇게 5년 동안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부터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형님과 나, 누님이 함께 자취하며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공는 물론 대입 준비를 하라는 부모님의 배려였다. 이처럼 부모님의 말씀 없는 교육은 내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 바탕이 되었다. 그 어떤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보다 부모의 작은 실천에서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육이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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