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선주의 감) #7 디자인실_1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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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선주의 감) #7 디자인실_1 컬러

케이스토리 0 09.26

회사를 창업하기 전에 여러 회사들을 다니면서 기획 방법의 차이를 경험했다. 내셔널 브랜드, 라이선스 브랜드, 벤더 등 여러 회사를 다녔었는데, 시즌 기획의 기간이 다들 조금씩 상이했다. 이유는 유통 방식 때문이었다. 전국의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대리점 중심의 브랜드에서는 크게 1년에 2번의 품평회를 했다. 지방의 큰 콘도를 빌려 12일로 진행하였는데 봄여름 시즌과 가을겨울의 옷을 한 번에 기획하여 품평한다.

 

품평회 때가 되면 전국의 대리점주들을 초대하여 의견을 듣기도 하고 상품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소비자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분들이다 보니 그들의 의견은 소비자의 의견을 대변하기도 한다. 매일 아침 디자인실에 도착하여 포스를 통해 옷이 나가는 판매추이를 체크하다 보면 대리점주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해 볼 수 있다. 그들이 품평회 때 내놓은 의견들을 참고하여 상품의 디자인을 보완한 상품들이 과연 그 매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가를 체크해 볼 수도 있고, 또 지방에 따라 선호 스타일, 선호 컬러 등이 다르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으니 아침마다 판매현황을 체크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디자인실이 이렇게 매일매일 판매를 체크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다른 회사의 디자인실에서는 이렇게 디자이너들이 판매를 매일매일 체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주간 단위 또는 월 단위로 체크하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세밀한 분석은 어려웠다.

 

대형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소비자들은 트렌드 반응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 시절 컬렉션에서 핫한 컬러를 썼다가 판매율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선호 컬러가 아니기 때문에 판매가 저조한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음 시즌, 아니면 그 다음 시즌에 동일 컬러의 판매가 상승하는 것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이미 백화점에서 전 시즌 쫙 깔렸던 컬러들은 어김없이 이번 시즌 유행 컬러로 사용하면 적중할 확률이 높다는 걸 경험했다.

 

물량이 많다보니 원단 기획부터 새롭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체크, 프린트, 원단 개발이 본사의 디자인실에서 모두 진행되었다. 캐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체크를 짜게 되는데 실의 굵기와 밀도에 따라 A4에 프린트 디자인을 출력하고 원단회사에 의뢰하면 원단으로 개발되어 나온다. 캐드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었던 디자이너가 디자인실에 나 혼자였기 때문에 실장님이 종이에 쓰쓱 그리고 원단 칩을 붙여 주면 그것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선배 디자이너들은 이런 일을 맡는 것이 싫어 프로그램 배우는 것을 모두 회피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그 역할은 디자인실 막내였던 내 차지였다. 깐깐한 디자인실 실장님 덕분에 스와치 컬러와 종이에 프린트된 색상이 동일하지 않으면 크게 혼났고 그때마다 두꺼운 색상표를 보며 CMKY의 수치를 대입하였다. 원단의 컬러와 종이 프린트 색상을 맞추는 것은 전문 그래픽디자이너들도 불가능하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 시절에는 실장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었다.

 

일이 안 끝나면 당연히 퇴근하지 못하는 시절이였고 하루에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이 쏟아지던 때였다. 그래도 그러한 경험들은 경력 디자이너가 되어서는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컬러에 민감하게 굴던 나를 답답하게 여기신 업체 사장님들은 B/T테스트를 하는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져지를 염색하는 염색 공장에서 어마어마한 탱크에 염료를 타는 과정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디자인실에서 컨펌하지 않으면 다시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깐깐했던 컬러 대한 민감함이 그 브랜드의 초석이 되었던 것 같다.

 

 

감선주 디자이너는 경희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에서 공부를 더하고 2010년 자신의 브랜드 ‘TheKam’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가면 디자이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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