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법정에서 지킨 명예

instagram facebook youtube
OPEN WRITE
▶ 모바일 홈 화면에 바로가기 추가하기

(안영환 에세이) 법정에서 지킨 명예

신발장수 0 2019.09.17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24- Not Guilty, Innocent

 

형사 재판에 있어서 유죄는 ‘Guilty’라고 한다. 반면 무죄를 나타내는 단어는 ‘Not Guilty’‘Innocent’ 두 가지가 있다. 피고인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검사의 몫이다. 검사가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경우 무죄가 되는 것이고 이 경우 ‘Not Guilty’의 표현이 될 것이다. 피고인이 본인의 무죄를 거증하여 입증한다면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Innocent’라고 한다.

 

ABC-MART가 왜 형사 소송을 했는지 그 의도가 너무나 명확했기에 소송을 통해서 확실하게 무죄를 입증시키는 것에 집중하였다.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부실한 공소장에 대한 지적이 있었음은 이미 밝힌 것이지만 그 이후에도 ABC-MART측에서 새롭게 제시하는 피의 사실은 없었다.

 

 

하루아침에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왔으니 10년 가까운 모든 자료가 고스란히 회사에 남아있음에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컴맹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자가 컴퓨터 정보를 운운한 것이 코미디와 같은 것이었다. 일찌감치 논쟁거리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전대차를 통한 배임 운운한 것도 애초부터 다툴 일이 아님이 밝혀졌다. 오히려 무고로 역고소를 해야 할 판이었다. ABC-MART2005, 2006년의 전대차 계약을 문제 삼았는데 형사 고발을 했던 20116월 보다 앞선 5월에 똑같은 전대차 계약을 한 것이 밝혀졌다. 내로남불인가? 공감능력의 부족인가? 전대차 계약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특히 회사의 자금 상황이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횡령에 대한 것이었다. ABC-MART에서 제기한 혐의는 내가 비자금을 조성해서 그 중 2억원 정도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전 회에 몇 차례 언급하였지만 사건의 개요는 이런 것이었다.

 

1) 무자료로 요구되는 권리금, 임차료, 중개 수수료 등 회계 관리가 어려운 현금성 경비가 사업 초기부터 발생하였다.

2) 개인자금으로 그러한 경비를 충당하였고 계속되는 수요로 인해 인테리어 대금을 초과 지급한 뒤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부외자금도 조성하여 경비를 충당하였다.

3) 회계상 비용처리가 되지 않는 현금성 경비(무자료 권리금 등)가 약 16억원 정도가 소요되었고 이중 부외자금을 조성해서 약 7억원을 충당했고 개인자금으로 약 9억원을 충당하였다.

4) 결론적으로 횡령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에 약 9억원의 채권이 존재한다.

 

간단한 얘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내막이 다 밝혀지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는 무자료 권리금 계약서 몇 건과 은행에서 제출받은 10년치 금융 거래 내역뿐이었다. 회계 처리할 수 없는 현금성 경비가 발생하면 개인자금이나 부외자금이 현재 있다면 바로 지출했다. 무자료 월세나 상대적으로 금액이 적은 권리금의 경우였다. 금액이 큰 경우는 우선 회사의 운영 자금에서 가지급금으로 선지출하고 이후 돈이 마련되는 대로 회사에 갚아 나갔다.

 

당시 ABC-MART의 급여 외에 2003년부터 10년간 부산에서 사업했던 법인의 잔고를 급여형식으로 매달 지급받아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부산 법인은 이렇게 현금성 비용 충당을 위해 사용되었고 후에 인테리어 팀을 영입해서 디자인 오소로 사명을 바꾸고 회사의 인테리어 전속 업체로 변화하였다. 이를 두고 사익을 취했다는 등 비난을 해댔는데 내용을 일부러 모르는 체하며 진실을 호도하는 데는 아연할 뿐이었다.

 

가지급금으로 우선 지출하고 후에 회사에 상환하는 방식을 확실히 규명하려면 ABC-MART 내의 회계장부가 필요했지만 매일 아침마다 결재했던 일일자금 일보마저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법원의 강제명령으로 일부 자료들을 확보하기는 하였으나 부실한 자료들로 내용들을 정확히 정리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S이사의 도움을 받아 가며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내역을 정리했다. 모든 수입과 지출을 금융거래로 했기에 10년의 금융거래 내역을 현미경으로 찾아내듯 맞추어갔고 마침내 1심 재판 중에 횡령에 대한 억울한 혐의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이 모든 부분은 검찰이 입증해야 했다. 부외자금 중에 2억원 정도를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그것을 다시 변제한 것도 없으며 또한 회사에 대해 아무런 채권도 없으니 당연히 횡령이 된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것이 입증된다면 나는 유죄이고, ‘Guilty’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무죄이고 ‘Not Guilty’인 것인데, 이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Not Guilty’가 아니라 오히려 회사에 대해 받아야 할 돈이 10억원 정도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Innocent’인 것이다.

 

형사고발이 되고 어이없이 기소가 되었고, 엄청나게 투자했던 사업마저 날렸지만 내가 지키려 했던 내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 명예는 지켰다. 다만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시간이 아까웠다. 의미 없는 재판으로 4년이 지났다.

 

재판이 마무리 될 즈음인 2015년 초 양재동에 조그만 사무실을 차렸다. 회사 이름이야 만들어서 등록을 하였지만 특별히 하는 일거리는 없었다. 그냥 무엇을 할까 궁리하는 회사라고 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