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 에세이) 주마등처럼 지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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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주마등처럼 지난 일

신발장수 0 2019.09.02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22- 이별.. 그리고 다시..

 

아침에 눈을 뜨니 모든 게 변해 있었다. 20년 이상 6시면 일어나 부지런을 떨던 아침 대신 멍하게 준비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했다. 생각할수록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가까운 지인이 간단히 요약했다. “너무 빨리 회사를 성장시켜 상대방이 욕심을 내고 군침을 삼키게 한 게 잘못이었다. 그리고 40대 샐러리맨의 정치적 성향에 무관심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조금만 더 세심히 살폈더라면 막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너무나 순진하고 단순하게 상대방을 내 생각과 도덕률에 이입시켰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지난 1년 동안 멀쩡한 두 회사가 속수무책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ABC-MART코리아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산의 ITC와 인레이도 나의 젊은 시절 열정과 분투가 고스란히 녹아있던 곳이었다.

 

 

20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회사를 만들고 키우면서 겪었던,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과 사를 넘나들던 기억들이 속속 소환되었다.

 

침목을 가득 실은 트럭의 조임줄이 터져 옆에 있던 프라이드급 정도의 택시를 덮쳐서 외국인 승객이 즉사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봐야만 했다. 1990년대 초 중국 상해에서 곤산으로 가던 길의 장면이었다.

 

대련에서 심양 가는 고속도로. 타고 가던 승용차가 펑크가 나서 타이어가 종잇장처럼 찢겨나며 자칫 도로 밖으로 튕겨나가거나 전복될 수 있을 만큼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 겨우 갓길에 세울 수 있었고 중국인 기사가 수리업체를 데려올 때까지 영하 30도 만주 대륙의 고속 도로가에서 몇 시간을 사시나무 떨듯 기다려야 했었다. 스페어 타이어는 두서너 군데 못에 찔려 못 쓰는 것이었는데 게으른 중국 기사가 새 타이어로 바꿔놓지 않았던 탓이었다. 차 안은 추돌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때가 1995년쯤 1월이었다.

 

대련의 개발구에 신발공장이 있었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혼자 돌아오는 택시를 탔는데 허허벌판에 신작로만 끝없이 뻗어 있었다. 중간에 이정표도 없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고 왼쪽 길로 갔었는데 30~40여 분을 달려도 불빛 하나, 인적 하나 없는 게 아닌가? 해는 이미 저물어 깜깜한 사방에서 다시 되돌려 나왔고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키 크고 덩치 좋은 순진했던 동북삼성 출신의 운전사가 15cm쯤 되는 단도를 항상 휴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기겁을 했던 기억도 있다.

 

 

광저우에서 내륙에 있던 공장을 가야 했는데 중간에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장대비를 뚫고 폐차 직전의 미니밴을 타고 가던 중 거의 범람 일보 직전의 조그만 하천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 상태가 불안했다. 차의 하중을 줄여야 해서 사람들이 먼저 내려 건너고 조심조심 차가 건넜는데 밤새 비가 갠 후 돌아오는 길에 보니 다리가 없어진 게 아닌가? 확인해보니 전날 우리가 건넌 직후에 다리가 붕괴되었다고 했다.

 

미얀마에 출장 갔던 첫날, 먹은 것이 문제가 되어 심한 장염 증세에 시달렸다. 병원에 실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의사의 낡고 땟물 낀 가운과 손톱 때를 보고 혼비백산, 치료는 고사하고 약한 알 못 먹고 내리 고열과 복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기억도 생생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죽을 수도 있었다 싶은 기억들이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이 30~40대의 열정과 헌신, 분투로 만들어냈던 회사가 초창기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제야 제대로 중심 잡아 가속을 하려 할 때 고스란히 빼앗겼다는 게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몇 달간 해외에서 쉬고 돌아오라는 조언도 들었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계속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말들이 들렸다. ABC-MART에서 또 거래처 관계자들을 모아놓고는 나에 대한 비방성 흠집 내기를 하는 것이었다. 또 당연히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정리해주지 않았다. 직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제출받아 조사를 한다고도 하였다. 회사 내를 탈탈 털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나에 대한 비방은 명예에 대한 것이라 내용증명을 보내고 항의를 했다.

 

그 와중에 SK네트웍스와 중국에서 신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SK네트웍스의 CEOL사장은 중국에서 패션에 이어 제대로 전개할 수 있는 유통사업을 찾고 있었고 한국에서 ABC-MART를 성공시킨 나를 적임자로 생각했었다. SK네트웍스는 이미 패션부문이 중국에 진출해있었고 상해를 중심으로 조직도 있어서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자본금 135억 원에 내가 30억 원 정도를 출자하는 합자 형태로 시작이 되었고 2011년 말에 상해에 1호점을 열 만큼 신속히 전개하였다.

 

한편 몇 차례 요청에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개인 돈으로 지급해서 정산 받아야 할 권리금 대금도 있어서 할 수 없이 민사소송을 통해 지급 요구를 하였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ABC-MART 측에서 나를 배임, 횡령 및 컴퓨터 장애 업무방해로 고소장을 제출한 것을 알게 되었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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