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hoice의 Market Story 3 - 3·1운동과 IMF, 그리고 아이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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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Choice의 Market Story 3 - 3·1운동과 IMF, 그리고 아이찜

BHChoice 3 2019.03.04

BHChoiceMarket Story 3

 

3·1운동과 IMF, 그리고 아이찜

 

吾等(오등)()() 朝鮮(조선)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이하 생략)”

올해 기해년(己亥年)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엊그제 31일은 나라 안팎에서 다양한 100주년 행사들이 있었다. 100년 전 그날의 함성을 생각한다. 식민지 지배 하 일제의 수탈로부터 우리 민족의 생존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저항운동이고 자주권을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이다. “우리는 왜 식민지가 됐을까?”, “우리는 왜 일제의 노예가 되어야만 했을까?”

경제적 수탈은 정치권력의 장악을 통해 이루어지고, 국가의 합병은 그 정점에 있으며, 그것이 바로 식민지 지배 체제인 것이다. 따라서 일제 치하의 우리도 종속 수탈 관계, 즉 대한제국 국민(조선인) 전체가 하루아침에 노예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울 수 없는 불행한 우리 역사다.

 

해방이 되고 시간이 흘러 산업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는가 싶었던 시점에 우리는 또 다시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바로 1997년 말에 일어난 IMF사태이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외채 상환에 적신호가 켜지고, 유동성이 경색되면서 소위 돈줄이 말라버리게 되니 온 나라 경제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끔찍한 일이 닥친 것이다. IMF라는 국제기구의 관대한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불쌍한 상황은 형태만 다를 뿐 반세기 이전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경제적 종속관계, 즉 돈을 빌려주는 댓가로 국가의 틀을 바꾸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 일종의 식민체제가 된 것이다. 나랏빚 갚아 보자고, 치욕적인 핍박을 벗어나자고, 일제치하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안 된다고 가가호호 금붙이를 내놓는 눈물겨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이 있다. 모두가 힘들어 하는 데도 역으로 부를 증식하고, 오히려 사업이 더 잘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매판자본이 부를 증식하더니, IMF사태 때에도 역으로 번창하는 기업이 있었다. 당시 대출금리는 년 30%에 달하고, 환율이 1달러 당 900원대에서 순식간에 2000원대까지 치달아 올라갔던 상황을 기억하는가? 자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금에 의존하던 기업과 수입업체들은 그대로 주저앉게 된 반면 수출업체들은 뜬금없는 횡재를 누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알고 지내던 모 업체는 950원 정도의 환율로 수출가격을 협상하고서는 대금결제를 받을 때는 1980원의 환율을 적용받았으니 세상에 그런 대박이 있을까 싶은, 일종의 로또를 맞은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90년대 중후반 학생들 가방은 ‘JANSPORT’, ‘EASTPAK’을 중심으로 ‘NIKE’, ‘FILA’ 등 스포츠 백팩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IMF사태는 학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국 브랜드 가방 메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규제하다보니 기존의 외국 브랜드 가방에다가 태극기 마크를 덮어 붙이는 게 짧은 기간이지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브랜드가 바로 ‘aizim’이었다. ‘아이찜의 모체는 가나안이라는 백팩류 가방 OEM 생산업체다. 대부분의 OEM 생산업체 오너들이 그러하듯이 가나안도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 했고, ‘우리 아이들의 봇짐이라는 의미의 ‘aizim’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런칭했다. ‘아이찜은 자체 생산 소싱력을 최대한 활용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이는 중저가 백팩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렇듯 기획단계는 어찌 보면 대단히 단순하였는데 문제는 시장 환경이었다. 런칭 시점에 뜻하지 않은 IMF사태가 도래하였고, 외국 브랜드를 구매할 수 없었던 소비자들의 한정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중저가 국산 브랜드 아이찜은 거의 유일한 대체재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aizim’은 런칭과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순식간에 시장에 안착했다. 말 그대로 대박을 친 것이다. 그 결과 가나안은 신성통상을 인수하고, 계열사에서는 폴햄을 런칭하는 등 지금은 명실상부한 중견 패션업체가 됐다.

 

그 무렵 필자는 아이찜에 몸을 담고 있었다. 성공적인 런칭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다음 단계가 더욱 고민일 수밖에 없다. 내부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아이찜성공의 주된 요인은 외부적 환경, 즉 시장 환경에 기인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시장 환경이 바뀌면 더 이상 안정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져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JANSPORT’‘EASTPAK’ 형태의 백팩 디자인에 ‘aizim’ 로고만 부착해서 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은 것 외에 브랜드 전략이나 고도화된 마케팅 전략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실제 국내 경제 상황은 생각보다 빠르게 IMF체제를 벗어나게 되면서 소비심리는 다시 살아나게 됐고, 준비되지 못했던 ‘aizim’ 브랜드는 빠른 속도로 추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Market on Hand’

당시 필자가 경영진에게 외쳐댄 절규였다.

 

환경은 끊임없이, 때로는 수시로 급격하게 변한다. 그런 외부의 변수에 좌우되는 비즈니스는 어쩌다가 행운을 만나 비록 성공할 수 있을지라도 그 달콤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유행에 민감한 패션산업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변수(變數)에 브랜드의 운명을 맡기면 안 된다. 브랜드는 상수(常數)를 만들어서 운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장을 내 손에 쥐는 일이다. 대부분의 국내 브랜드(Domestic Brand)들은 그때그때 시장에 맞춰서 브랜드를 전개하려는 경향이 짙다. 내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기보다 지나치게 유행을 따르려하기 때문에 내 것이 없고, ‘내 것이 없으니 시장을 ‘on hand’하지 못하게 되고, 시장을 ‘not on hand’하다 보니 브랜드를 지속할 수 없다. ‘내 것상수(常數)’이다. ‘상수(常數)’가 만들어지면 시장에 끌려가지 않고 시장을 ‘on hand’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IMF사태라는 변수(變數)에 의존하여 성공한 ‘aizim’이 좀 더 이른 시간에 상수(常數)라는 무기를 장착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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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문승욱 2019.03.04 22:48
좋은 글입니다. 좀 다른 얘기긴해도 이랜드가 푸마 잘 키워놨더니 한국에 법인 설립해서 팽당하고 뉴발란스로
재기 했다하데요. 독자 브랜드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지요.라이센스계약 내용도 중요하겠지만요..
BHChoice 2019.03.04 23:05
푸마의 성장과정, 이랜드와 푸마의 결별, 그리고 뉴발란스 한국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다음 기회에 글 올릴게요~~^^
휴먼리 2019.03.05 00:32
잘읽고 공부하고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