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2027년부터 디지털제품여권(DPP)제도를 의무화함에 따라 섬유 패션 업계는 소재, 생산지, 탄소배출, 재활용 가능성 등 전 과정의 환경 데이터를 공개 및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DPP는 단순한 라벨 표기를 넘어 제품의 생애주기를 디지털로 추적해 소비자와 업계 전반에 투명성을 제공하는 제도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베인앤컴퍼니와 이베이는 이 제도가 패션 제품의 수명 가치(life value)를 최대 두 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쟁 질서가 다가오는 가운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내구성과 지속가능성을 기업 철학으로 삼아온 소재 과학 기업 고어가 주목받고 있다. 고어는 DPP가 지향하는 가치와 동일한 궤를 달리며 제품 수명을 연장하고 환경 영향을 줄이는 혁신을 선도해왔다.
고어 사는 2014년부터 매년 ‘사회적 책임 보고서’를 발간하며 ESG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2017년에는 PFC 제거와 OEKO-TEX, bluesign 인증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고 2020년에 OEKO-TEX 인증 100%, bluesign 승인 85%를 달성했다. 또한 2018년부터는 고어텍스 소비자 의류 원단에 PFC-Free 발수 처리 시스템을 도입해 환경 부담을 낮추면서 제품 내구성을 높이는 지속가능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고어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장기 목표를 세우고 2030년까지 자사 시설의 탄소배출량 60% 감축, 제품 관련 배출량 35% 감축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2024년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 따르면 섬유사업부의 Scope 3(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 배출량을 전년 대비 7% 줄였으며 Scope 1&2(자체 운영에서 발생하는 직접 및 간접 배출) 배출량은 -54%를 기록해 2025년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또한 제조시설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역시 75%에 도달했다.
혁신 소재 개발에서도 고어는 선두에 서 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ePE 멤브레인’은 기존 고어텍스 소재의 방수 방풍 투습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PFC-Free 기술을 적용해 환경 영향을 크게 줄였다. 더불어 재활용 원단, 원액 염색 무염색 기법을 도입해 물 사용량을 최대 60%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소재는 2025년 하반기까지 고어텍스 전 제품군에 순차 적용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내구성 프리미엄 지속가능성’이라는 고어의 핵심 가치를 아우르는 섬유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예정이다.
DPP 시행까지 2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와 패션업계는 DPP 요구사항과 이를 충족하기 위한 정보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잇달아 강조하고 있다. 섬유 공급망 전체의 원자재 정보, 제조 이력, 탄소 배출량, 재활용 가능성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만큼 단순한 라벨 표기 수준을 넘어선 디지털 데이터 관리 체계가 필수다.
해외에서는 이미 대체 방안을 구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사례를 속속히 선보이고 있다. 영국 패션 브랜드 노바디스 차일드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DPP 도입에 나선 사례 중 하나다. 2023년 9월부터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해 현재는 주요 컬렉션으로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으며 제품 케어라벨에 부착된 QR코드를 통해 소비자는 전 주기 공급망 정보, 탄소발자국, 물 사용량, 관리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홈페이지에서는 원료 가공, 염색, 봉제 등 공정별 국가 공장 정보와 참여 근로자 수까지 공개하며 단순한 제품 구매를 넘어 생산 과정 전반의 투명성을 제공한다.
미국 유통 대기업 타겟도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2024년 자사 의류 브랜드 ‘유니버설 스레드’ 약 3,500만 벌에 DPP를 적용, QR코드를 통해 소재 구성, 제조국, 생산일자 등 기본 정보와 함께 세탁법, 스타일 추천, 중고 판매 경로까지 제공했다. 나아가 중고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와 연동해 재판매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했으며 이를 통해 판매 이력과 재활용 데이터를 동시에 축적해 순환경제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