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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한일 갈등의 시작

신발장수 0 08.09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18- 욕심이 드러나는데


 

2010년이 되었다. 환율은 여전히 약세여서 100엔이 1,400원대를 넘나들었고 그 영향으로 서울에 일본 관광객이 넘쳐난다는 뉴스가 지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3월 중순쯤이었다. 미키 회장의 전화가 왔다. “지금 부산의 ITC(H부사장과 직원들에게 사업을 넘겼던 신설 회사) 사무실로 급히 와달라는 것이었다. 긴급한 일이 터진 것 같아 부랴부랴 부산으로 향했다. 반여동에 있던 ITC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해가 거의 넘어간 퇴근시간 무렵이었는데 마치 정지 화면처럼 사무실은 정적만 감돌았고 직원들은 책상에 앉아 거의 고개도 들고 있지 않았다. 사무실 한편의 조그만 회의실에 상기된 표정의 미키 회장과 H사장이 앉아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었다.

 

핵심은 미얀마에 설립해서 운영 중이던 써니상사라는 공장의 S사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영에서 손을 떼고 H사장에게 인수를 요청했는데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았던지라 ABC-MART와 미키 회장의 돈으로 인수를 하였다. 그런데 H사장은 써니상사를 자신이 인수한 것이고 자금은 차입금이라고 주장했고 일본 측은 빌려준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한 것이고 H사장은 단지 위탁관리인이라는 것이었다. 거기다 일본 측의 주장은 단순한 위탁관리인인 H사장이 엄청난 이익을 챙겨서 투자자이자 상품 구매자인 ABC-MART가 큰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고성이 오가는 격렬한 다툼이 끝나고 일단 H사장이 외부감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겠다고 한 상황이었다.

 

 

그날 저녁, 미키 회장과 일본 ABC-MART의 이사인 K씨와 식사를 하러 갔는데 ITC의 과장인 K가 나타났다. 내가 회사를 넘긴 후에 입사한 직원이라 초면이었는데 일본어를 전공했고 ITC에서 일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저녁을 함께하면서 대화는 자연히 H사장에 대한 것이었는데 듣고 보니 K과장이 그 동안 H사장에 대한 이러저러한 비위사실들을 모아서 일본에 보고한 것이었다. ‘H사장이 엄청난 이익을 남겼는데 분식 회계를 통해 횡령을 했다’. ‘싱가포르 등에 돈을 빼돌려 외환관리법을 위반했다는 등 듣기만 해도 엄청난 얘기들이었다. 그날 저녁에 들은 얘기들로만 종합해보면 누가 봐도 H사장이 부도덕한 것이었다.

 

미키 회장은 자신이 한국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으니 외부감사를 알아봐달라고 했고 그때가 3월 중순, 회계감사 기간이라 어렵게 수소문해서 외부감사를 맡길 수 있었다. 회계사 3~4명이 집중적으로 감사를 했고 10일쯤 뒤 감사보고서가 나왔는데 보고서를 받아보고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H사장의 주장대로 써니상사 인수대금은 차입금이었다. 원금을 상환하고 있었고 이자를 지불하고 있었다. 환율의 급등으로 자재 원가가 낮아져서 이익이 많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 보고서에는 미얀마가 당시 경제제재를 당할 때라 외환 거래가 어려워 자재대금, CMT(제조비용) 등의 결제를 싱가포르에서 했고 외환 거래법상 위반의 가능성은 있다. 다만 한국에서 서류로만 감사를 하는 한계가 있어 외환 거래의 내용은 추가로 조사를 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다.

 

일본에 보고서 내용을 보냈다. 차입금이 명백하니 그간 환율상승으로 발생한 이익을 일부 조정하는 의미에서 제품의 단가를 얼마간 낮추자고 할 줄로 기대했는데 일본 측의 반응은 뜻밖에도 부도덕한 H사장과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고 횡령과 외환 거래법 위반으로 고발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드는 생각은 직원들이었다. 사장을 형사고발하고 거래를 중단한다고 하면 회사가 정상적으로 존립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희생되는 직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이 나와 같이 초기부터 고락을 같이 해온 사람들이었다.

 

일본 측을 만나서 지금도 동요하고 있는 조직인데 확실치도 않는 혐의로 사장을 형사고발을 하면 어떻게 되겠나? 당장 ABC-MART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좀 더 차분하게 처리하자고 설득했다.

그럼 안 사장이 책임지고 정리해 달라. 일단 H사장은 내보내고 조직이 안정되면 2라운드를 하자

“2라운드라뇨?”

샅샅이 뒤져서 형사고발을 해야지요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일단 발등의 불을 꺼야 했다. H사장은 거의 넋이 나간 듯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H사장이 미얀마 공장들에 임가공 방식으로 자재를 공급하기 위해 ITC 외에 별도로 INLAY라는 개인회사를 만들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급등해서 본의 아니게 이익이 크게 발생했고 환율 변동은 잦은 오르내림이 있는지라 가격 조정은 안 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이익금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ABC-MART가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원화 환율의 변동이 있기에 달러로 구매하는 것은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고 며칠 뒤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연락이 왔다. 일본측의 강경한 입장으로 그 동안 INLAY에서 가져간 수익금 약 20여억원을 회사에 입금시키고 사퇴하였다. 그리고 ITC는 업무에서 배제되어 휴면법인이 되어버렸고 청산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H사장이 물러나자 일본측은 자신들이 100% 출자하여 ITC를 대신할 새로운 법인을 세웠고 INLAYH사장이 의결권을 포기하게 한 후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일본측의 의도대로 H사장이 물러나게 되니 ITC, INLAY, 그리고 미얀마의 써니상사가 한번에 오롯이 일본 소유가 되어버렸다. 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업무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내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려 했지만 몇몇 직원들의 퇴사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오랫동안 같이했던 직원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안정이 되어갔다. 할 수 없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여가 지난 5월말쯤 일본에서 부산으로 파견되어 있던 일본의 K가 황당한 말을 했다. INLAY에 발주하는 제품의 단가를 거의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INLAY가 적자를 보면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제품의 단가는 약 70%가 원자재비, 20%CMT(제조비용), 그리고 10%가 일반관리비였는데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원자재값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H 사장을 내보내고 모든 회사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때서야 왜 그렇게 무리하게 H 사장을 축출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의 요구대로라면 그 동안 한국에서 견실하게 커온 회사가 단기간에 고사하게 되는 것이었고 그 속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비전을 빼앗는 것이었다. 대표이사를 사직했다. 일본의 K가 새로운 대표가 되었다. 정말 웃긴 것은 일본에 H사장의 비위 사실을 고해 바치던 K과장이 이사로 발령이 난 것이었다.

 

K과장을 불러내 해운대 하버비치 2층의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화가 났다. 처음 만났던 날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알리겠다고 하던 것들이 이것이었냐고 물었다. 일본에서 빌린 돈이었고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었고 환율이 급등해서 기대하지 않던 이익이 발생한 것일 뿐 일본에는 아무런 손해도 끼친 것이 없지 않으냐? 형사처분을 받을 정확한 증거도 없지 않은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런 짓을 해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직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견실한 회사들은 다 일본 것이 되어버렸고 일본의 이익을 위해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당신 한 사람의 영달을 위해 이렇게 모든 것을 희생 시켜야 했나?!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엄청 흥분했었던 것 같았다. 습관 중 하나가 노트나 이면지에 글을 쓰면서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기억나는 것은 그 때 노트가 10장 이상 찢겨 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2개월 정도의 의미 없는 대표이사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K과장과 나눈 얘기들이 고스란히 일본으로 넘어갔는지는 확인한 바 없지만 나름대로 원칙을 얘기했으니 속은 후련했다. K과장은 이사로 전격 승진하였는데 최근에 들은 바로는 얼마 전 다시 과장으로 좌천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다시 ABC-MART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곧바로 6월 중순쯤 일본으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왔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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