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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다방) 엄혹한 디자이너의 길

나브나브 0 08.08

  

<편집자주> 요즘 패션시장은 디자이너의 전성시대가 맞다. 하지만 모든 디자이너가 전성시대는 아닌 것 같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하지만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왜 그럴까? 현직 디자이너이자 사루비아다방의 마담을 꿈꾸는 어떤 이가 이런 의문을 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쓴이는 스타트업이고 독립 디자이너다. 때문에 현실을 맨몸으로 버티는 중이다.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장의 후진 골목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것으로 믿는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참고, 사루비아다방은 인사동에 있었던 다방인데, 근대화때부터 70~80년대까지 지식인과 문학인들이 모여서 토론하던 다방이다. 나중에 없어진다는 소리를 듣고 한예종에서 매입해서 갤러리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사라졌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내게 너희 브랜드는 발전이 없는 것 같다. 왜 신상품을 내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도 나쁘고 화가 났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사업이라는 게 운이라는 것도 필요한 데 나의 상황도 모르고 발전이 없다고 쉽게 말하다니,,, 억울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나를 돌이켜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상품을 내지 않았던 것 팩트였다. 한국 패션업계라는 곳에 염증을 느껴 그들의 룰에 맞춰 하지 않겠다는 객기 아닌 객기를 부리면서 신상품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브랜드 런칭 초기에 멋모르고 들어갔던 편집숍. 그곳의 MD들에게 휘둘려서 매 시즌 신상품과 구색이란 걸 갖추는 무모한 짓을 했었다. 돈 벌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부지런히 신상품을 출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았다. 나는 자본금도 적고, 맨파워도 적었던 스타트업이었다. 나중에 나에게 맞는 채널을 찾아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고 엄청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진리라고 생각했고, 결국 출시한 상품들은 말 그대로 디자이너를 위한 상품들이 되고 말았다. 이 말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감만 주는 상품만 출시하는 꼴이 됐다는 의미다.

 

과연 매 시즌 신상품을 내는 것이 독립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걸까?

 

브랜드의 유래를 보면 노르웨이 고어 ‘brandr’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단어는 태운다(to burn)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고대 유럽에서 가죽에게 자신의 것이라는 낙인을 찍어 표시하는 형태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죽에 불도장으로 불박 각인을 하는 것이다. 이 표식이 브랜드다.

 

지금의 브랜드는 하나의 컨셉이나 캐릭터를 표현하는 도장이 되었다. 브랜드 하나로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내가 과거에 내놓았던 구색 상품들은 브랜드 구축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을까? 지금 수많은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 자기 브랜드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몇 개나 될까?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와 자금력을 갖춘 브랜드가 같은 방식으로 브랜드를 전개해야 하는가?

 

여기서 간단하게 디자이너 브랜드 시작과 끝을 얘기하자면,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처음에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스타일로 자기만의 브랜드를 시작한다. 준비한 처음은 참 괜찮다. 여기저기 입점하고, 소개되고, 조금씩 팔리기 시작한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창업할 때 한 2~3천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하는데, 그렇게 첫 번째, 두번째 시즌이 지나갈 때쯤 두 가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자본금이 소진되었고, 다른 브랜드처럼 팔리는 제품을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때 사입을 해서 품목을 늘려야하나 하는 문제도 더해진다.

 

MD는 새상품과 매출에 대한 요구를 하는데 이때 디자이너 브랜드에게 기성 브랜드가 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여기서 자금력이 있으면 따라갈 것이며 없으면 상품 노출이 줄어들며 곧 폐업을 하게 된다. 혹시 첫 시즌이 색다르고 괜찮아서 브랜드가 랜딩을 잘하고 있다면 어김없이 여러 기성 브랜드들의 모방 창조가 시작된다. 나 또한 그런 모방창조에 당했고 이런 게 패션업이라는 사실에 너무 크게 상심했다.

 

한국의 디자이너 편집숍이라는 곳은 디자이너를 들러리 새워 본인들이 직접 잘 팔리는 디자이너 상품의 대체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디자이너 브랜드 느낌의 도매스틱 브랜드들이 메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런 걸 디자이너 편집숍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런 생태계 아래에서 내게 브랜드가 발전이 없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걸까? 어쩌면 나는 패션산업을 잘 몰라 헛소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해외의 패션 트레이드쇼는 우리와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자기색깔로 행거 하나만 채워서 바이어들에게 영업을 한다. 하나의 아이템으로 전 행거를 채우며 영업하기도 한다. 디자이너 편집샵이라는 곳은 디자이너의 오리지날리티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몇 개라도 사입을 해서 판매한다. 그렇게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준다.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면서 디자이너가 자신의 개성을 담은 시즌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4차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고 AI 시대가 오면 더욱 더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유행하면 모두 그 옷을 입는 시대가 끝나고 나의 취향에 맞춘 제품, 정보들이 제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네이버를 열면 나를 위한 상품들이 따라다닌다.

 

이런 시대의 경쟁력은 개성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에게 있다고 확신한다. 십년 전 어느 컨퍼런스에서 제일기획의 김홍탁 CD가 덕후의 시대가 온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콘텐츠 생산자가 필요한 시대가 오는 것이다.

 

패션업계가 덕후 같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보여주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에게 기성 브랜드화 되지 않고,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며 계속 브랜드를 전개할 수 있도록 다양성이 존중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준다면 한국 패션계는 BTS처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시장이 되지 않을까? 꿈꿔본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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