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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 드디어 국내 입성

신발장수 1 08.02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14- ABC-MART의 한국 진출

 

일본도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적 암흑기가 온 적이 있었다. 가수요에 편승해 몸집을 키우던 대형 유통회사들이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이에이, 소고 등 알만한 백화점들도 무너졌다. 일본 ABC-MART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도매, 소매로 이어지는 유통의 결재라인에서 부도 사례가 속출하였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ABC-MART는 기존의 도매업을 줄이고 직영매장을 확대해서 소매업으로 바로 들어가는 전략을 세웠다. 10여개쯤 있던 ABC-MART 매장을 확대하였다. 이런 전략적 판단은 기존의 도매상들을 통한 리스크 헤지[risk hedge]라는 기능이 더 이상 유효한 것이 아니었는 데다가 자사의 PB‘HAWKINS’, ‘VANS’가 직영 ABC-MART 매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었고 그것의 원가율이 워낙 낮아 어느 정도 매출만 된다면 도매로 파는 것보다는 훨씬 이익이라는데 따른 것이었다.

  

 

90년대 후반쯤 우리 회사가 연간 5,000~6,000만불 정도 수출을 했으니 신발 개수로 따지면 500~600만족에 이르는 것이었다. 일본 내에서는 이 정도의 수량을 쿼터에 구애 없이 수입할 수 있는 경쟁사가 없었다. 더군다나 한국, 중국을 거쳐 방글라데시, 미얀마로 생산기지를 옮긴 터라 제조원가는 갈수록 낮아졌다. 당시에 아세안국가에서 신발을 만들어 수입하는 일본회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간혹 있다 해도 소량, 일회성이었다.

 

방글라데시, 미얀마의 안정적 생산기지화는 일본 ABC-MART에 엄청난 기회요소였고 덕분에 사업을 직영소매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다. 2000년도에 일본 ABC-MART는 한국의 코스닥격인 JASDAQ을 거쳐 도쿄증시 1부에 상장을 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당시 ABC-MART의 영업이익률이 20%가 넘는 것이었고 그런 엄청난 이익의 근원이 어디인지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즈음 미키 사장을 만나면 안 사장이 ABC-MART의 부사장입니다라고 농담하곤 했다. ABC-MART가 직영매장을 강화하고 확대하면서 일본유통시장에 관심을 가지던 한국과 대만의 유통업체들로부터 사업제안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 날 미키 사장이 전화를 했다. 지인을 통해 한국에서 ABC-MART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만나서 확인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들어보니 첫 매장의 입지를 학동사거리와 갤러리아 백화점의 중간쯤, 로데오 길가의 건너편에 정하겠다고 했다. 소매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특히 ABC-MART에 대해 정확한 정보도 없이 막연히 일본브랜드라 Traffic이 떨어져도 고급상권에 있으면 찾아오는 고객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었다.

 

미키 사장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한국에서 ABC-MART를 할 만한 데가 있으면 소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후 일본으로 직접 문의를 한 몇 군데 회사가 있었고 내가 소개해준 회사도 있었는데 모두 다 두어번 만나고 나서는 결국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중에는 내가 봐도 맞지 않는 곳도 있었지만 몇 군데는 나름 한국에서 제대로 리테일 사업을 하는 회사여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중단되곤 하니 괜히 내가 답답한 정도였다.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내가 어렵사리 소개한 회사는 백화점사업을 하는 유통전문 기업이었고 ABC-MART의 한국전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음에도 두 번의 만남 이후 일본에서 더 이상 진행을 하지 않았다. 미키 사장을 만나 이유를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처음 미키 사장을 만났을 때도 오래 전 거래했던 SK의 담당자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었고 전부터 거래했던 한국공장들에 대한 묵은 불만이 많아서 생각을 바꾸게 하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안사장이 한국에서 ABC-MART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경험도 없는데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로 고사하였고 믿을 사람이 없으니 지금까지의 열정으로 한번 해보라는 설득이 이어졌고.. 오랫동안 숙고의 시간을 보냈다.

 

기억나는 얘기 하나!

“10년 정도 한 가지 일을 쭉 했으니 지겨울 수 있다. 아직 한창 젊으니 10년에 한번씩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1992년도에 사업을 시작하고, 2002년도에 ABC-MART를 시작했다. 2011년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으니 거의 10년 주기로 새로운 일을 한 셈이 되었다.

 

고민과 숙고는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거의 10년 동안 일본 ABC-MART에 신발 수출을 했는데 3~4년씩만에 생산기지를 한국, 중국 그리고 방글라데시와 미얀마로까지 옮기며 더 이상은 갈 데가 없을 만큼 경쟁력을 극대화 해놨고 끌고 갈 인적자원과 구성도 탄탄하게 구축을 했으니 미키 사장의 요청대로 지금이 나름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2002년 초 월드컵 열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 무렵에 ABC-MART를 한국에서 해보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월드컵의 열기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6개월여 열심히 발품 팔아가며 시장조사에 매달린 후 드디어 2002829ABC마트코리아가 설립되었다. 자본금 30억에 일본과 한국이 각 51 49의 지분으로 합자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후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지분비율이었지만 당시에는 49%의 소수지분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당시 상장되어 있던 일본 ABC-MART가 연결재무가 쉽게 될 수 있도록 51%를 가지라고 내가 제안한 것이었다. 다만 이왕 국내 유통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거라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확실히 경영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만 하였고 다음의 4가지에 합의하고 회사를 설립했다.

 

합의한 사항은

1) 지분은 일본과 한국이 각 51 49로 정한다.

2)경영권은 안영환이 가진다.

3)양적조건이 충족되면 IPO(주식상장)를 실시한다.

4)경영의 보상으로 영업이익의 5%는 안영환이 인센티브를 가진다.

이상의 내용이었다.

 

일종의 주주간 합의서(Share holder Agreement)였는데 문제는 서로 합의를 했음에도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키 사장과 나는 일반적인 거래 관계 이상의 관계였다고 생각했다. 해외 출장 때면 같은 방에서 숙식하는게 당연할 정도로 형제와 같은 끈끈한 관계였다. 연결재무제표상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소수지분을 오히려 제안하였고 나름의 주주간 합의를 구체적으로 정했으면서도 이심전심의 마음이 끝까지 지속되리라 믿어 문서로 남기지는 않았다. 열정을 쏟아부어 새로운 사업을 기필코 성공시켜서 미키 사장에게도 기대 이상의 이익과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때는 정말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호의만으로 정했던 결정들이 결국 커다란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을 줄을 어찌 알았을까?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선경(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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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송호승 08.0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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